황금빛 가죽
부처님이 라열기성 기사굴산에 계실 때 그만 풍병(風病)에 걸리셨다.
이에 당대의 명의 기역(祈域)이 부처님을 위해 서른두 가지 약재를 섞어 약을 만들고는 하루에 서른두 냥쭝씩 드시게 했다.
그런데 늘 부처님을 시기하던 제바달다는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부처님처럼 대접받고 싶어 기역을 불러 말했다.
"나에게도 그 약을 만들어 주시오."
기역은 그를 위해 약을 지어주고는 말했다.
"하루에 네 냥쭝씩만 드십시오."
"부처님은 몇 냥쭝씩 드시오?"
"하루에 서른두 냥쭝씩 드십니다."
기역이 말했다.
"그럼 나도 그렇게 먹겠소."
"부처님과 당신 몸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부처님처럼 많은 양을 드시면 도리어 큰 병이 생기고 말 것입니다."
"나도 부처님처럼 그 약을 소화해낼 수 있소. 내 몸과 부처님 몸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는 거요? 잔말 말고 약이 모자라지나 않도록 해주시오."
이렇게 해서 하루에 서른두 냥쭝씩 약을 먹은 제바달다는 결국 약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는 사지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일으키는 병에 걸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부처님은 멀리서 신통력으로 손을 뻗어 제바달다의 이마를 어루만져주셨다. 그러자 제바달다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그는 고마워하기는커녕 비아냥거렸다.
"흥, 다른 재주는 세상이 몰라주니까, 이젠 의술로 이름을 날려 볼 생각인가?"
그 말을 들은 아난은 원통하고 분한 나머지 부처님 처소로 달려가 말씀드렸다.
"제바달다는 그야말로 파렴치하고 배은망덕한 인간입니다. 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병을 고쳐주셨음에도 그는 도리어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항상 부처님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말했다.
"제바달다는 비단 오늘만 나를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니다. 전생에도 항상 악심을 품고 나를 해치려 했느니라."
"그렇습니까?"
"내 너를 위해 말하리니 잘 듣도록 하라."
그렇게 해서 부처님은 제바달다와의 악연을 이야기해주었다.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에 바라나라는 커다란 성이 있었는데,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범마달이었다.
그는 천성이 흉포하고 사나워 자비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또 사치스럽고 음탕하여 백성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범마달 왕이 한번은 꿈속에서 온몸의 털이 황금처럼 빛나는 짐승을 보았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자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꿈에서 본 그 이상한 짐승이 이 세상에 없으리란 법은 없다. 사냥꾼들에게 명하여 그 짐승의 가죽을 얻어야겠다!"
곧이어 그는 여러 명의 사냥꾼들을 불러놓고 명했다.
"나는 꿈속에서 온몸이 마치 황금처럼 빛나는 이상한 짐승을 보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그런 짐승이 있을 테니 너희가 7대 손까지 먹고 남을 정도로 큰 상을 내릴 터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삼족을 멸하리라!"
범마달 왕의 명령을 받은 사냥꾼들은 저희끼리 모여 의논했다.
"아니 세상에 그런 짐승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딜 가서 그 짐승을 잡아오라는 거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죽을 목숨이고... 대체 이 일을 어쩐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적도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간 독충이나 맹수의 해를 입기 십상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함께 돈을 모아 누군가를 고용해서 그 비슷한 짐승이나마 찾아보게 합시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의견일치를 본 사냥꾼들은 곧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고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도 구했다. 그리고 그 사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디 우리가 말한 짐승의 가죽을 꼭 구해오도록 하시오. 만일 구하면 더 많은 돈을 줄 터이고, 설혹 산 속에서 무슨 나쁜 일을 당한다 해도 잔금은 반드시 당신 아내에게 건네줄 것이오."
사냥꾼들의 말에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짐승의 가죽만 구해오면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 해도 내 처자식만은 잘살 수 있는게 아닌가!'
사내는 곧 짐을 챙겨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냥꾼들이 말한 짐승은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길을 떠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사내는 사막으로 들어섰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심한 갈증과 찌는 듯한 더위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사내는 모래언덕 위에 쓰러져 울부짖었다.
"아, 여기서 죽게 되었구나. 이 막막한 사막에 그 누가 있어 내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단 말인가!"
사내는 땅을 치며 한탄하다가 급기야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온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타(鋸陀)라는 짐승이 멀리서 그 말을 들었다. 그는 못내 가여운 생각이 들어 곧 찬 샘물에 몸을 적시고 달려와 그 사내의 메마른 피부를 적셔주었다.
잠시 후 사내가 정신을 차리자 거타는 그를 샘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실컷 물을 마시고 목욕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고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먹을 만한 과일을 모아다가 사내에게 주었다.
거타의 모움으로 심신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짐승은 생전 처음 보는데 온몸이 황금처럼 빛나는구나. 그렇다! 이 짐승이야말로 범마달 왕이 꿈속에서 본 바로 그 짐승이리라...!!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내가 죽게 되었을 때 이 짐승이 나를 구해주었는데, 어찌 해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짐승을 잡아 가죽을 구하지 못하면 나를 고용한 사냥꾼들과 그 가족은 모두 죽고 말 것이 아닌가...!'
사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에 빠져 슬퍼했다. 그러자 거타가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하고 계십니까?"
사내는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자신의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이에 거타가 말했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지금껏 윤회하며 수없이 죽었지만 일찍이 복을 짓기 위해 목숨을 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 이 몸의 가죽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내 기꺼이 드리리다. 하지만 내 가죽을 벗기되 바로 목숨을 끊지는 말아주십시오."
사내는 거타의 부탁대로 바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산 채로 그 가죽만 벗겼다. 잠시 후 알몸이 된 거타는 하늘을 우러르며 서원을 세웠다.
"저는 이제 제 가죽을 이 사람에게 보시하여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제하고자 합니다. 이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돌리나니, 그들이 하루빨리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나이다....!"
거타가 서원을 마치자 3천세계가 진동했다. 이에 깜짝 놀란 천인(天人)들은 그 연유를 파악해보다가 거타가 제 몸의 가죽을 보시한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여러 가지 꽃을 뿌리며 칭찬하고는 감동의 눈물을 마치 빗물처럼 뿌렸다.
가죽이 벗겨진 거타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8만 마리의 파리와 개미떼가 달려들어 거타의 맨살을 파먹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 때문에 거타는 근처의 땅굴속으로 피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파리와 개미떼가 깔려죽을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를 악문 채 참고 서 있다가 마침내 목숨을 다하고 말았다.
한편 그 사내는 거타의 가죽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 사냥꾼들에게 주었다.
사냥꾼들이 황금처럼 빛나는 거타의 가죽을 왕에게 바치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언제나 그 가죽을 깔고 누워 있기를 즐겼다. 그렇게 해서 사냥꾼들과 그 가족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긴 이야기를 들려주신 부처님이 말했다.
"아난아, 그때의 거타는 바로 내 몸이고, 범마달 왕은 저 제바달다니라. 그는 그때도 나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도 착한 마음은 전혀 없고 늘 나를 해치려고만 하고 있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아난을 위시한 여러 대중은 그 끔찍함에 몸을 떨며 슬퍼했다.
악연이 한번으로 그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한번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에 악연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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