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능가경(入楞伽經),중편1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2)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세 법의 자체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니,
대혜여, 무엇이 세 법의 자체 모양이냐. 첫째는 허망하게 명자(名字)를 분별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요, 세째는 제일의 제 법체의 모양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허망하게 명자를 분별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명자를 따라서
허망하게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함이니, 이를 허망하게 명자를 분별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냐.
대혜여,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란 것은 경계와 사법을 따라서 나는 것이다.
대혜여, 인연 법체의 경계와 사법은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차별이라 말씀하시나니라. 그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가지냐. 첫째는 허망하게 명자와 희론에 집착하여 분별함이요,
둘째는 허망하게 명자상(名字相)에 집착하여 경계상(境界相)과 사법 모양을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허망하게 명자상과 경계상과 사법상에 집착하는 것이냐.
말하자면 곧 저의 안과 바깥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이니라.
대혜여, 이를 인연 법체의 두가지 제 모양인 모양이라 하나니,
그는 저의 법에 의하여 저 법이 생(生)하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이를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제일의 제 법체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부처님 여래는 명자상과 경계상과
사법상을 떠나고 거룩한 지혜로 수행하는 경계니,
대혜여, 이를 제일의 제모양인 여러 부처님의 여래장(如來藏)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명상을 분별하는 것과
또한 인연법이 두 모양인데,
진여(眞如)의 바르고 묘한 지혜만은
이것이야말로 제일의 상(相)이라네.
“대혜여, 이를 다섯 법의 제 모양을 관찰하는 법문이라 하며,
부처님과 보살의 속으로 체득할 경계를 수행하는 모양이라 함이니,
그대와 여러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두가지 무아(無我)를 잘 관찰할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두 가지냐. 첫째는 인무아(人無我)의 지혜요, 둘째는 법무아(法無我)의 지혜니라.
어떤 것이 인무아의 지혜냐. 말하자면 나와 내것이라 함과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을 떠나고,
지(智)와 업(業)과 애착으로 생(生)하는 것이 없으며, 눈과 빛깔들에 의하여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과,
제 마음에서 일체의 모든 감각기관과 몸과 집들을 나투어 보인 것과, 제 마음의 분별로 분별한 것과,
분별하는 알음알이인 것과, 강물의 흐름과, 종자와 등불 타오름과 바람과 구름과 같아서
생각 생각이 굴르면서 앞 뒤가 차별하며, 가볍게 날뛰고 움직여 굴르는 것은 원숭이와 같으며
깨끗지 못한 곳을 좋아함은 파리와 같으며 만족이 없는 것은 불과 같은 것과
끝없는 옛적부터 희론 경계로 훈습한 것과, 마치 두레박의 바퀴와 수레 바퀴가 돌고 움직임과 같아서
삼계에서 가지 가지 형태와 몸을 받아 나는 것이
요술로서 시체를 산 사람처럼 일으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들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찰하는 선교방편(善巧方便)의 지혜를 이름하여
인무아를 잘 아는 지혜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법무아의 지혜냐. 말하자면 참다히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의 모양을 분별함이니
대혜여, 보살이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이 나와 내것이라 함이 없으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들은 업과 애착의 줄로 인하여 번갈아 서로 묶이는 인연으로 생긴 것이며,
<나>도 없고 <짓는>것도 없는 것임을 관찰함이니라.
대혜여,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은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여읜 것이언만
진실치 못한 상(相)과 분별에 의하여 이름을 얻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망상 분별로서
그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진실법을 체득한 이는 있다고 보지 아니하니라.
대혜여,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과 다섯 법의 체상은 모두 여읜 것이며,
모든 인연은 없는 것이라고 본다면, 법무아 지혜인 경계를 잘 안다고 할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이 법무아를 잘 알고서 진여를 관찰하고 수행을 닦는다면 오래지 않아
마땅히 첫 환희지(歡喜地)를 얻을 것이며, 환희지를 잘 관찰하면
이와 같이 모든 지위가 차례로 더욱 밝아져서 내지 법운지(法雲地)까지 체득하게 되리니,
보살이 그 법운지에 머무르면 한량 없는 모든 보배가 사이 사이마다 얽히고 꾸며져서
큰 연꽃자리와 큰 보배궁전에서 진실한 업과 환(幻)의 경계를 닦아서 나는 것처럼 그 위에 앉을 것이며,
여러 수행을 같이 하는 불자들이 공손히 둘러 모실 것이며,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손을 펴시고
그의 정수리에 물 부어 부처의 지위를 주시는 것이 전륜왕이 그 태자의 정수리에 물을 부어줌과 같아서
불자의 지위를 벗어날 것이며, 불자의 지위를 벗어나고는 부처님 법을 관찰하고
참다히 수행하여 모든 법에서 자재(自在)함을 얻을 것이며,
자재함을 얻고나면 여래의 최상 법신을 얻을 것이라 말하리니, 이는 법무아를 보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를 진실한 법무아의 모양이라 하나니라.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배울 것이니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비방함이 있고 없는 것을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저희와 여러 보살 마하살이 만일 이를 듣는다면 있고 없는 사뙨 소견을 벗어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서는
단견과 상견의 사뙨 견해를 멀리 여의고 곧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건립하리이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의 청함을 또한 받으시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속엔 단견과 또한 상견
몸과 살림살이와 사는 곳 없거늘
마음이 어리석고 지혜 없어서
물건 없는 데서 있다고 보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게송의 뜻을 다시 설명하려고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비방을 건립하는 모양이 있나니, 무엇이 네가지냐.
첫째는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세째는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네째는 자체가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니
대혜여, 이를 네가지 건립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이 비방하는 모양이냐.
대혜여, 사뙨 소견으로 건립한 바 법은 실상(實相)을 볼 수 없음을 관찰하고
곧 모든 법을 비방하여 말하되 ‘모두가 없다’고 하나니 대혜여,
이를 이름하여 비방을 건립한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은 있지 않는 법이라 분별하며,
끝없이 오면서의 희론은 진실함이 있지 않다 하기 때문에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에 집착하되,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이니라.
대혜여, 이는 한량 없는 옛적부터 오면서 번뇌의 훈습과 집착으로서 생긴 것이다.
대혜여, 이를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대혜여, 저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 가운데에는 나와 남과, 중생과 수자(壽者)와 짓는 이와 받을 이가 없거늘
사뙨 견해를 세워서 나와 남들이 있다고 말하나니 대혜여, 이를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함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처음 알음알이는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니,
본래 생긴 것은 아닌데 후에 생긴 것이 환(幻)이 본래 없지만 물건으로 인하여 생긴 것과 같아서
눈과 빛깔과 밝음과 생각으로 인하여 알음알이가 생긴 것이요, 생겼다가 도로 없어진다’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건립하여 법을 비방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허공과 없어짐[滅]과 열반은 짓는 것도 없고 물건도 없다 하여 집착함을 세운 것이다.
대혜여, 저 세 법인 허공과 멸(滅)과 열반은 있고 없는 것을 여읜 까닭이니라.
대혜여, 모든 법은 토끼와 말과 나귀와 낙타의 뿔과 헛보이는
허공의 털바퀴(毛輪)와 같아서 있다 없다고 보는 모양을 여읜 것이니라.
대혜여, 비방함을 세우는 모양은 범부들이 허망하게 분별하여 모두가 오직 마음임을 알지 못하고
모든 법이 있다고 본 것이니, 이는 성인(聖人)의 본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이를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건립하여 법을 비방하는 모양이라 함이니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올바르지 못한 견해로 법을 비방함을 세우는 것을 멀리 떠날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참다히 심(心)과 의(義)와 의식(意識)과 다섯 법의 체상과
두가지 무아(無我)를 알고서 중생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가지 가지 종류와 형상을 나타내나니,
저 허망한 것과 같아서 분별할 바 없는 것은 인연법에 의해서 가지 가지가 있는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 의하여 가지 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여의주가 모든 중생의 마음 생각을 따르듯이 모든 부처님 세계의 대중 가운데서 환(幻)같고 꿈 같으며
메아리 같고 물속의 달과 거울속의 얼굴과 같은 것을 나타내며,
모든 법의 생멸(生滅)과 단, 상(斷相)을 멀리 떠났으며, 여래의 성문과 연각승 떠난 것을 나투기도 하며,
부처님의 법을 듣고 즉시 한량 없는 백천만억의 깊고 깊은 삼매를 얻으며, 삼매를 얻고는
삼매의 힘에 의하여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또 딴 부처님의 세계에 이를 때마다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여러 궁전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보이어 삼보(三寶)를 찬탄하며,
부처 몸을 나투고 보살과 성문 대중들이 둘러 모신데서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이 경계를 나타낸 진리에 들어가게 하고, 바깥 경계에 대하여
물질이 없고 물질이 있는 것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있다 없다고 건립하는 것을 멀리 여의게 하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불자여, 세상의 온갖 것이
오직 마음뿐 딴 법 없다고 본다면
모든 것을 몸으로 짓지 않더라도
힘을 얻어 마음대로 이루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이 또한 다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노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 법이 공하여 생(生)함도 없고 둠이 없으며,
자체모양을 떠난 것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 대중이 법이 공하여
생함이 없고 둘이 없으며, 자체모양을 떠난 것을 알게 되오면 있다 없다하는
허망한 망상을 떠날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을 것이옵니다.”
그때에 부처님이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해 널리 분별해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기쁩니다. 세존이여, 순순히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공(空)이라는 것은 바로 망상 법체(妄想法體)인 어구(句)니라.
대혜여, 그 망상 법체에 집착함에 의하여 말하되, ‘법이 공하여 생함이 없고 자체가 없으며,
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니라.
대혜여, 공함이 일곱 가지가 있나니 무엇이 일곱이냐.
첫째는 모양이 공함이요, 둘째는 일체 법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요,
세째는 행(行)이 공함이요, 네째는 행 아닌 것이 공함이요, 다섯째는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요,
여섯째는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第一義聖智大]의 공함이요, 일곱째는 저와 저가공[彼皮空]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모양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일체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이 공함이라는 소견이
번갈아 서로 쌓여 모인 것이니, 대혜여, 낱낱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할진대
한 법도 있을 수 없고, 제 모양과 다른 모양인 두 모양을 떠난 것이어서,
모양들이 있을 수도 볼 수도 없기에 제 모양이 공한 것이라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의 있는 물질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체모양에 실로 법이 있다고 하나
대혜여, 모든 법의 자체 모양은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공했나니,
그러므로 자체 모양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行)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등이 <나>와 <내것>이라 함을 떠났는데
인연과 짓는것과 업에 의하여 생기게 되나니 대혜여, 이러하므로 행이 공한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 아닌 것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법 가운데는 본래 열반일 뿐 행은 있지 않음이니,
대혜여, 이를 행 아닌 것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생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한 것이어서
말로서는 말할 수 없나니 대혜여, 이를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기 몸이 안으로 거룩한 지혜와 법이 공함을 체득하여
모든 사뙨 견해와 훈습의 허물을 떠난 것이니
대혜여, 이를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저와 저가 공함이냐.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에는 저 법은 없고 이 법은 있으며,
저법은 있고 이 법은 없나니, 이러하므로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다.
대혜여, 내가 옛적에 사슴어미[鹿母 = 一名 鹿子母니 人名으로 女子의 이름]를 위하여 말한
전당(殿堂)이 공했다 함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 등이 없으므로 공했다 함이요,
여래 비구(比丘)들이 있으므로 공함이 아니라 한 것이다.
그리고 전당에는 전당 자체가 없고 비구에도 비구 자체가 없고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들이 딴 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고,
이와 저의[此彼] 곳을 떠났기에 내가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이를 일곱 가지 공함이라 한 것이다.
대혜여, 이의 ‘저와 저가 공함’이 가장 거칠고 옅음이 되나니,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저와 저가 공한 것을 떠날 것이요, 닦을 것은 없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不生]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자체가 생하지 않으며 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 것만 세 법에 의하여 생(生)함이라 말하고,
본래 생하지 않는 것에 의하여 불생(不生)이라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자체 모양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말한 자체모양이 없다는 것은 일체 모든 법의 자체가 본래 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법이 자체가 없고, 계속되는 자체도 찰나 동안에도 머무르질 않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보고 나서는 달라져서 달라지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법의 자체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을 둘이 아닌 법의 모양이라 말하옵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법의 모양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햇빛과 그림자와 길고 짧고 검고 흰 이러한 법들이
각각 이름이 다르나니 둘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다. 대혜여, 저 세간(世間)과 열반과도 같아서 모든 법도
각각 둘이 있나니 대혜여, 어떤 열반인들 그 곳에 세간이 없으며,
어느 곳의 세간인들 그 곳에 열반이 없으리요.
다르다는 것은 모양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 말하니라.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세간과 열반이 둘이 없는 까닭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마땅히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을 닦아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공한 법 말함은
단견과 상견 떠난 것이니,
죽고 삶은 환과 꿈 같은데
그러나 그의 업만은 없질 않네
허공과 그리고 열반이여
둘 없앤 것도 또한 이러한데
범부들은 괜히 분별하건만
성인은 있고 없는 것 떠났다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들은
모두 여래의 말씀하신 수다라 속에 들어 있나니, 모든 법문엔 이러한 뜻을 모두 말하였나니라.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는 여러 중생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분별로서 알려 주었나니
대혜여, 비유컨대 아지랑이를 잘 알지 못한 새와 짐승들은 허망한 집착으로서 물이라고 생각하건만
그러나 아지랑이 속에는 실로 물이 있지 않는 것과 같아서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 말한 법도 또한 그와 같나니, 범부들의 마음속으로 분별하는 것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진실한 성인의 지혜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뜻을 따르고 말한 바 명자나 글귀에는 집착하지 말 것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여래 갈무리의 자성[如來藏自性]은 청정하여
三十二 모양을 갖추고서 일체 중생의 몸속에 있건만 욕심 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진실치 못한
번뇌의 때로 더럽혔으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의 옷에 얽히고 싸인 것이 피었기에
값진 보배가 때옷 속에 묻힌 것과 같다 하시옵고, 세존께서 또한 말씀하시되
‘떳떳함이고 항상함이고 청량(淸凉)함이며, 변치 않는다’ 하옵시니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나에게 신비한 나[神我]가 있어 항상 있으며, 변치 않는다’하옵니다.
여래께서 또한 여래 갈무리는 항상 떳떳하며 내지 변치 않는다 말씀하시오나 세존이시여,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떳떳한 것으로 된 것인 <나>는 모든 인연에 따르지 않고도
자연히 모든 것에 두루하고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나이다.
만일 그와 같을진대 부처님과 외도의 말이 다를것이 없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떳떳하다 함은 외도들의 있다고 한 신아(神我)와는 같지 않나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하는데 공함과 실제(實際) 진리와 열반과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는다는[不生不滅]것과 모양 없으며,
원(願)함 없다는 등의 말과 글귀로서 여래 갈무리를 설명하였노라.
대혜여, 여래 응공 정변지(正遍知)는 여러 어리석은 범부들이 무아(無我)란 말을 들을 적에는
놀래고 두려워 하는 생각 내는 것을 위하기 때문에 내가 여래장(如來藏)을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래장은 분별할 바 없으며, 고요하고 모양 없기에 여래장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현재와 미래의 모든 보살은 응당 <내>가 있다는 상(相)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대혜여, 비유컨대 질그릇 만드는 이가 진흙과 미진(微塵)과 바퀴와 끈와 인공(人功)과 손과 나무와
방편의 힘에 의하여 여러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이 저 법이 <나>라 함이 없고, 모든 분별하는 모양이 없는데서
지혜와 교묘한 방편으로 여래 갈무리라 말하며, 혹은 무아(無我)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실제와 열반등의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여 알려 주는 것이
그 질그릇 만드는 이가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는 외도가 말한 <나> 있다는 것과 같지 않느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은 외도의 <나>라 함에 착함을 위한 것이니,
그들을 포섭하려고 여래 갈무리를 말하여 저 외도들로 하여금 신아(神我)가 있다고 하는
허망한 소견과 마음에 집착한 곳을 벗어나고,
三해탈의 문에 들게 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노라.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는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있다는 것은 외도의 신아(神我)가 있다고 집착한 것과 다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외도의 사뙨 견해를 버리기 위하여 부처님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여래의 <나>라 함이 없는 법을 닦아 배울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이니 나니하고 그리고 五음과
뭇 인연과 또한 작은 티끌과
자성이 제대로 지은 것이여
이가 곧 마음의 허망한 분별일세.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미래의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서 또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위하시어 진실한 수행법을 말씀하옵소서.
저 여러 보살들이 진실한 수행법(修行法)을 듣기만 하오면 진실한 수행자가 되오리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법이 있어야만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 무엇이 네가지냐.
첫째는 제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세째는 바깥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네째는 속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좋아하여 닦는 것이니
대혜여, 보살이 이와같은 네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알아 관찰함이냐.
말하자면 삼계(三界)가 다만 한 마음으로 된 것이며, <나>와 <내것>을 떠난 것이며,
움직이는 것도 없고 지각(知覺)함도 없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을 떠났으며,
끝없이 오면서부터 삼계의 훈습함과 희론의 마음에 허망스리 집착한 것이며,
가지 가지 색[色]과 행(行)에 항상 묶인 것이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속에 육도(六道)가 허망하게 나타난 것들을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모든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난다고 하느냐.
말하자면 모든 법이 눈홀림 같고 꿈 같은 것이며, 모든 법의 자타(自他) 두가지가 없는 것이며,
그 생기지 아니하건만 제 마음에서 나타나는 지견(知見)을 따르는 것이며, 바깥 법이 없는 것이며,
여러 알음알이가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인연의 모임이 없는 것으로 관찰하는 것이며
三계가 인연으로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며,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음은
실체가 없기 때문인 것이며, 모든 법이 있다고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를 멀리 떠난 것이며,
모든 법이 환(幻)의 모양과 같은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이 그 때엔 초지(初地)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것이라
심(心)과 의(意)와 식(識)과 다섯법의 체상을 멀리 떠나며, 두 무아[二無我]와 뜻과 같은 몸을 얻고,
그리고는 내지 제八 부동지(不動地)의 뜻과 같은 몸을 얻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뜻을 따라 빨리 갈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곧 이르되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다고 말한 것은 석벽(石壁)과 산이 막히기를
한량없는 백천만억 유순(由旬)이어도 본래 보았던 바 경계를 생각만 한다면
자기 마음속엔 장애물이 구애될 것 없이 자유로이 가게 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은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환(如幻) 삼매의 자재한 신력을 얻어
그 몸을 장엄하고 모든 거룩한 지혜의 종류에 나아가는 몸이기에 걸림 없이 뜻을 따라 가되,
본원력(本願力)의 경계를 생각하므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교화하나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떠난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냐.
말하자면 보살은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털바퀴 같으며,
끝없이 오면서 가지가지 희론 분별과 망상 훈습에 집착된 것이며,
일체 법이 체상(體相)없는 것임을 보고서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체득하려고 수행하나니라.
대혜여, 이를 보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이가 곧 큰 여실수행(如實修行)을 성취한 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 인의 모양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모든 법인연의 모양을 잘 아오면, 있다 없다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와
망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차례로 생긴 허물과 일시로 생긴 허물을 여의게 되리라 하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두가지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 있나니,
이른바 안[內]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은 이른바 진흙덩이와 나무 기둥과
바퀴와 줄과 사람의 공력과 방편의 인연으로 병(甁)이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진흙덩이 등의 인연으로서 병이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실[絲]로 짠 것과 초석(草席)과
짜는 틀을 끼움과 젖의 즙과 인공(人功)으로 타락[酪]이 생기고, 타락이 생기고는 수가 생기고,
수가 생기고는 제호를 얻나니라.
대혜여, 이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함이니 밑[下]에서 부터 위에 이르러[上上]도
그러함인 것을 응당 알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안의 법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냐. 대혜여, 이른바 무명(無明)과 업(業)과 사랑인
이러한 법들을 안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하나니
대혜여, 무명등과 음(陰), 계(界), 입(入)등으로 인한 것임을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여러 범부들은 그를 허망스리 분별하여 각가지 다른 모양으로 보나니라.
대혜여, 인연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이 되느냐. 첫째는 당인(當因 = 자체인 원인을 말함)이요,
둘째는 상속인(相續因)이요, 세째는 상인(相因 = 자체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원인)이요,
네째는 작인(作因)이요, 다섯째는 요인(了因)이요, 여섯째는 상대인(相對因)이니라.
대혜여, 당인이란 것은 인연을 지으면 능히 안과 바깥법을 내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속인은 안과 바깥의 법과 음(陰)의 종자 등을 능히 반연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인은 능히 상속(相續)을 내고 차례로 일을 지으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대혜여, 작인은 능히 증상(增上)하는 인(因)을 짓는 것이 전륜왕(轉輪王)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요인은 일이 생기는 것을 허망스리 생각하고서
능히 나타나게 보이는 것이 등불이 색상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상대인은 그 없어질 때엔 허망하게 생긴 법이 보이지 않고 상속(相續)하는 일이 끊어지는 것이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은 범부들이 자심(自心)에서 허망하게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이의 모든 법은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요, 일시(一時)에 생긴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만약 일체 법이 일시에 생긴 것이라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인과의 제 모양을 볼 수 없을 것이요, 만일 차례로 생긴 것이라면
제 모양을 얻을 수 없음에 차례로 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아들이 있지 않음에 아버지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자기 마음에서 차제(次第)와 상속(相續)이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므로
이러한 말을 하되, ‘인연(因緣)과 차체연(次第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들이
능히 모든 법을 낸다’고 하나니
대혜여, 이러한 차제(次第)로서는 모든 법이 생기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는 허망한 분별로서 법체상(法體相)을 취한 것이니, 일시와 차례로도 모두 생겨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이는 자심중(自心中)에서 몸과 살림살이가 나타나 보인 까닭이니라.
대혜여, 제 모양과 같은 모양과 바깥 법은 원래 없는 법이니, 그러므로 차례로 일시에 생겨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는 다만 허망한 알음알이가 자심의 견해를 낸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인연으로 생겨진 일들이 차제로 일시에 생긴 법이라고 하여
올바르지 못하게 보는 것을 떠나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연법도 없어 생하지 않나니
생하지 않으므로 멸하지 않고
생멸(生滅)과 인연이 모두 허망하여
생도 아니며 멸도 아니라네.
이러한 인연 모두 아니라 함은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며
있고 없는 연기법 생함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김 아니니라.
그는 삼계에서 훈습한
미혹의 마음 때문이니
인연이란 본래 없으며
생도 멸도 아니었네.
세상의 온갖 유위법(有爲法)을
돌 계집과 허공 꽃으로
관찰하여 능, 소취(能所取) 떠나면
허망한 소견 나지 않으리라.
현재 나타나 있는 것 본래부터
모두 생(生)함이 아니며,
인연인 연기법(緣起法)도
본래부터 있는 것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들은
자체가 전혀 공한 것이며
또한 머무를 곳도 없건만
세속을 따라 있다고 말함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언어상(言語相)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心法門)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언어상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을 얻어 잘 알게 되오면
곧잘 말과 뜻의 두가지 법을 통달하여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오며,
보리를 얻고는 말과 뜻으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알음을 얻게 하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허망한 모양인 언어가 있나니라. 무엇이 네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상언설(相言設)이요, 둘째는 몽언설(夢言設)이요, 세째는 망집언설(妄執言設)이요,
네째는 무시언설(無始言設)이니라.
대혜여, 상언설이란 것은 이른바 색(色) 등의 모든 모양에 집착하므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몽언설이란 것은 본시 수용하던 허망한 경계를 생각하되 경계의 꿈에 의하여 깨닫고는
허망한 경계, 진실치 아니한 것에 의지하여 생긴 것임을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집착언설이란 것은 본시 듣는 바와 짓는 바 업을 생각하여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무시언설이란 것은 끝없이 오면서부터 희론번뇌와 종자훈습에 집착하여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내가 말하던 네가지 말인 허망한 집착을 내 이미 말했노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 다시 이의 뜻으로써 부처님께 청하여 여쭈려고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저희를 위하여 네가지 허망하게 언어(言語)의 상(相)에
집착한 것을 거듭 말씀하옵소서.
중생의 언어는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이오며, 어떻게 출현하오며, 무슨 원인으로 나게 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 머리와 가슴과 목구멍과 코와 입술과 혀와 어금니와 이로부터 굴르므로,
화합하여 소리가 나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입속의 언어가 허망한 법상(法相)과 다른 것이옵니까. 다르지 아니한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언어는 허망한 법상과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저 허망한 법상으로 인하여 언어가 나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만일 언어가 그와 다르다면 응당 원인이 없이 생겨졌어야 하리라.
대혜여, 만일 그와 다르지 않다면 언어는 능히 현진의 경계를 말로 표현함을 알리지 못하여야 하리라.
대혜여, 그러나 저 언어는 현전의 경계를 능히 알리고도 남음이 있나니,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라.”
대혜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가 되옵니까, 언어로서 설명할 바가 제일의가 되옵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언어가 바로 제일의가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제일의로 하여금 언어를 수순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게 함이니, 그러므로 언어로서 제일의를 설명함이 있을 뿐이요,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는 아니니라.
대혜여, 제일의는 거룩한 지혜로 깊이 증득할 바요, 언어의 법은 아닌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니,
언어로서는 그 경계를 알릴 뿐이니라.
대혜여, 제일의를 설명하는 언어도 이 생멸(生滅)의 법이니,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고 인연으로 화합하여 언어가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인연으로 화합한 그것은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제모양[自相]과 다른 모양[他相]이 없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언어로는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니라.
대혜여, 자심에서 바깥의 있고 없는 법들을 보고서 분별함을 따르기에 제일의를 능히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가지가지 언어로 허망스리 분별하는 상을 떠날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허망하여
진실한 자체가 없나니,
그러므로 여러가지 말로서
있다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공함과 또한 공함 아님을
범부는 잘 알지 못하나니
모든 법은 자체상이 없으며
중생이라 말함도 또한 그러하네.
있다 없다 분별하는 법은
마치 꿈과 환(幻)같나니,
일체 법을 관찰하여 열반에도
세간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리.
왕과 부자 어른들이
여러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진흙으로 만든 새짐승을 먼저 주고
진실한 물건은 다음에 주듯이
나도 여러 불자를 기쁘게 하려고
가지가지 법과 자체 법이며
거울 모양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서
최후에야 실상법을 말하노라.
그때에 거룩한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여러 보살과 및 저희를 위하여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俱]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없는 것을 떠난 것이어서 모든 외도는 행하지 못할 바며,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증득한 깨달음으로만이 행할 수 있는 법을 말씀하옵소서.
그는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떠난 것이오며, 제일의의 참다운 법성(法性)에 드는 것이오며,
모든 지위의 차례와 최상으로 청정한 것이오며, 여래의 땅에 들어 가는 것이오며,
본원력에 의지하여 여의주(如意珠)와 같이 한량없는 경계와 수행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오며,
일체 법에서 자심으로 차별상을 나투어 보이는 것이오니, 저희와 일체 보살들은
이와같이 망상으로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고, 일체 중생에게 편안함과 좋은 것들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만족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대혜여, 그대는 모든 천인(天人)을 불쌍히 여겨,
그들로 안락과 이익이 많게 하려고 능히 나에게 이러한 뜻으로 묻는구려.
착하고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겠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오직 이 마음으로 보여진 것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밖으로의 가지 가지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참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러므로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게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그는 자심의 훈습으로 인한 것이며,
허망스리 분별하는 마음을 의지함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뭇 짐승들이 목마름에 시달려 아지랑이를 보고 마음이 착란하여 그를 물이라 생각하고
동서로 헤매면서 물이 아님을 알지 못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범부들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생(生), 주(住), 멸(滅)의 법을 보고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희론 훈습과,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집착하여 미혹한 마음으로 시달려서
가지 가지 모든 색경계(色境界)를 좋아하여 구함이니,
그러므로 범부들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떨어지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乾達婆)의 성(城)을 보고 참 성이라고 생각을 내는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성이라고 분별하는 생각의 종자와 훈습으로 인하여 보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저 성은 성이 아니며, 성 아닌 것도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의 희론과 훈습에 인하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법들에 집착하나니
대혜여, 그는 오직 마음에서 허망스리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떠한 사람이 꿈속에서 여러 남자와 여인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도보(步)와 성읍(城邑)과 취락(聚落)과 소와 물소와 동산 숲과 나무와 각가지 산과 하수(河)와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과, 궁전과 누각과 가지 가지로 장엄한 것이 광대하고 화려한 것을 보기도 하며,
자기 몸이 그 속에서 있는 것도 보다가 문득 꿈이 깨어 깨닫고서는 그 광대한 성읍들을 생각한다면
대혜여, 그대 뜻에는 어떻다고 할까. 그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할수 있느냐.”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의 사뙨 소견으로 본 여러 가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그는 모든 법을 꿈속에 있는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같은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의 견해에 집착한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그림속의 모양은 높지도 않으며, 낮지도 않는 것과 같건만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괜히 모든 법이 높고 낮음이 있는 것으로 보나리라.
대혜여, 닥아오는 세상에서 외도의 사뙨 소견에 의하여 마음에 훈습함이 더욱 더하여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리니, 대혜여, 저 외도는 자신도 버리고 남도 버리면서
이러한 말을 하되,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아니하여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고요하다’하나니,
그 사람을 이름하여 올바르지 못한 견해라 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인과법(因果法)도 비방하나니, 사뙨 소견에 빠진 까닭이라,
일체 착한 뿌리와 깨끗한 법[白法]과 청정한 종자를 뽑아 버리나니라.
대혜여, 수승한 법을 구하려면 마땅히 그와 같은 법을 말하는 사람을 멀리 할 것이니,
그 사람은 마음이 자타(自他)의 두 소견에 집착하였으며, 허망한 법에도 집착하였으므로
법을 비방하는데 떨어질 것이며, 사뙨 마음을 가졌기에 악도(惡道)에 들어가리라.
대혜여, 비유컨대 눈병으로서 허공중에 털바퀴[毛輪]가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되,
‘이와 같이 푸르고 누르며, 붉고 흰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털바퀴(毛輪)는 본시 자체가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보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이 사뙨 소견에 의지하여 허망스리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나니라.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이 모든 법을 내었다고 집착하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하늘의 비가 물거품을 내어 수정 구슬 같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한 소견으로 집착하여 구슬이라는 생각을 내어 동서(東西)로 헤매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물거품은 보배 구슬이 아니며 보배 구슬 아닌 것도 아닌 무슨 까닭이냐.
구슬이라고 취하여 취(取)하지 못할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의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분별하며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다.
그가 있지 않는 법을 말하여 ‘인연에 의지하여 생겼다’고 하며,
또한 ‘실로 법이 없어지는 것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삼종량(三種量)과 오분론(五分論)을 세워서 이러한 말을 하되,
‘실로 성자(聖者)의 안으로 증득하는 법이 있는데,
두 자체[二自體]를 떠난 것이라’하여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대혜여, 심(心), 의(意), 식(識)을 떠나면 이 몸을 변해서 문득 성인(聖人) 종류의 몸을 얻으리니,
여러 가지 행을 수행하되 그러한 마음이 없이 자심의 소견과 허망한 경계를 취하는 것을 떠날 것이며,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 자신이 정진(精進)하여 거룩한 지혜를 증득할 것이니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있다 없다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라.
대혜여, 여실히 수행하면 반드시 이와같은 경계를 얻을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유무법(有無法)을 취함이 있다면 곧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되리라.
대혜여, 유무법(有無法)과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말함은 이는 응화불(應化佛)의 말이요,
법불(法佛)의 말이 아니니라.
대혜여, 응화 여래가 이와 같은 법을 말함은 어리석은 범부의 보는 마음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이요, 참다운 수행을 건립하여 자신(自身)의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와 삼매락행(三昧樂行)을 보여줌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사람이 물 속의 나무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저것은 그림자가 아니며, 그림자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나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나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사뙨 소견의 마음에 의하여 망상으로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는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을 분별하나니, 이는 망상으로 분별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그는 오직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인연을 따라 모든 색상을 비추어 나타내되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저(거울에 비추어 나타난 것)은 색상도 아니며
색상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인연이 있으면 나타나 보이고 인연이 없으면 나타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자심의 분별로 색상이 있고 없는 것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들이 자심의 망상으로 거울의 색상을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들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여러 음향이 사람과 산과 강물과 허공과 집으로 어울려서 들리는 것과 같나니,
저 들리는 바 음향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소리로 인하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는 자심의 허망과 분별 훈습으로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보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큰 땅이 풀과 나무와 동산숲이 없는 곳에 햇빛과 먼지와 흙이 어울림으로 인하여
물결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나니라. 그러나 저 물결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이냐.
중생으로 하여금 그들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와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 번뇌의 마음과
희론으로 훈습함을 인하여 생(生)과 주(住)와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이는 성인이 몸소 깊이 증득하는 지혜의 문에서 아지랑이를 목이 타게 좋아하는 일들을 보여준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주술(呪術)의 힘에 의하여 죽은 사람과
기관목인(機關木人 = 움직이도록 만든 나무 사람)을 이르키기도 하며,
중생의 산 몸이 없는데도 피사카(전광귀癲狂鬼)의 힘과 공교한 환사(幻師)의 힘에 의하여
가고 오게 하는 일들을 하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그에 집착하여 실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 오고 가고 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이 사견(邪見)의 마음에 떨어진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망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범부와 외도는 허망하게 이와 같은 법을 내세우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생(生), 주(住),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떠날 것이니,
이것이 몸소 깊이 거룩한 지혜로 분별함을 증득함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五음과 알음알이는
물 속의 나무 그림자 같고,
꿈과 환으로 보는 것 같나니,
의식에 의해 취하지 말지어다.
모든 법은 털바퀴 같으며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는 것 같나니,
삼계의 모든 것을
환과 꿈으로 관찰하리.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하여
수행하면 해탈을 얻으리라
여름날에 물을 찾는 짐승이
아지랑이에 착각 일으킴 같느니
그곳에 물이 없건마는
허망한 생각이 물로 보듯이
알음알이의 종자로서
경계에 통한 소견 같느니라.
어리석어서 진실인양 취(取)하나
저 법 생김이란 헛보임 같은데
끝없는 세월의 어리석음으로
물질을 취함이 품에 안음 같느니라.
쐐기로서 쐐기 나오게 함 같아서
범부를 속여 들어가게 하는 법이며
환술로 시체를 일으키는 기관이라
꿈, 번개, 구름이듯 항상 그러하네.
세간을 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면
유(有)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
아지랑이는 허공중에
모든 알음 있지 않나니
모든 법을 이와 같음으로 관찰하여
일체 법에 집착하지 말라
여러 알음알이는 이름뿐이니
모든 상이 공했기 때문이니라.
五음을 보는 것 헛 보이는 털바퀴거니,
어느 법엔들 분별하랴
그 그림과 헛 보인 털바퀴며
환이요, 꿈이요 건달바니라.
불바퀴와 새가 물로 여긴 아지랑이는
실로 없건만 있다고 보나니
떳떳함과 무상함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이며,
그는 끝없이 오면서
속박 되었는
범부의 미혹한 마음에
의지하여 된 것일세.
밝은 거울 보배 마니(摩尼)와
맑은 물 깨끗한 눈(眼)에서
가지 가지 색상이 나타나거든
허망스리 가지 가지 빛깔을 보느니라.
일체 법은 진실함 없는 것이
꿈과 돌 계집 같으며
짐승이 허공에 아지랑이를
물로 알고 좋아함과 같느니라.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네가지 견해를 떠났나니 말하자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을 여읜 것이다. 있다 없다 내세우는 것을 멀리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실제(實際)와 인연과 적멸(寂滅)과 해탈에 의지하느니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구경(究竟) 경계에 의지한 것이며 자성(自性)을 인한 것이 아니고
자재천(自在天)이라 하며, 인(因)이 없고
미진(微塵)과 시간이라고 하는 이러한 설법을 따르지 아니하노라.
대혜여, 부처님의 설법은 두가지 장애[障]인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을 떠났느니라.
큰 장사주(大商主)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차례로 처음 보는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러 두듯이, 여래로 사람들을 차례로 안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과 지위의 차별상(差別相)을 잘 알게 하느니라.
대혜여, 네 가지 선(禪)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禪)이요, 둘째는 뜻[義]을 관찰하는 선이요,
세째는 진여(眞如)를 생각하는 선이요, 네째는 부처님 여래의 선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성문과 연각과
외도인 수행자가 인무아(人無我)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골쇄(사람의 몸이 백골로 되었다고 관하는 백골관(白骨觀)임)로 관하므로 무상(無常)함이며,
괴로움[苦]이며 <나> 없으며[無我], 깨끗지 못한 것[不淨]이라 하고 모든 상에 집착함도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결정코 필경에는 다르지 않다 하여 이와 같이 차례로 앞에서 관한[前觀] 것으로 인하여
차례로 올라가서 내지 비상(非想)과 멸진정(滅盡定)의 해탈에 이르나니,
이를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성문들의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뜻을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인무아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관하였음으로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자기 몸과 다른 이의 몸인 자타(自他)의 모양이 진실함이 없는 것을 보고,
법무아(法無我)와 모든 지위의 행상(行相)과 뜻과 차제(次第)를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뜻을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분별의 인연을 관찰하여
두가지 무아(無我)를 참다이 알고 일체 모든 법이 진실한 체상이 없는 것을 참다이 분별하여
그 때로서 분별함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에 고요한 경계를 얻음이니
대혜여, 이를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참다이 여래의 땅에 들어가며,
안의 몸[內身] 거룩한 지혜의 모양과 삼공(三空)과 삼종락(三種樂)의 행에 들어 갔으므로
능히 중생에게 베풀 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이룬 것이니
대혜여, 이를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부들의 행하는 선과
뜻을 관찰하는 선과
진여를 관하여 생각하는 선과
구경인 여래 청정선이여
마치 해와 달의 모양과
파드마[鉢頭摩]와 바다 모양과
허공과 불이 다한 모양인양
수행자가 이렇게 관한다면,
이와 같은 갖가지 모양은
외도에 떨어지는 법이며,
또한 성문과 벽지불들의
수행함에 떨어진 것이다.
일체 것을 버리고 떠나면
이는 곧 있는 바[所有] 없음이니,
이 곧 여여한 진실상에
수순하여 들어 간 것이라.
그때엔 시방 세계에서
여러 부처님이 진여의 손으로
그 수행자의 이마를 만져 주시며
진여의 모양이 없는 데에 들게 하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 열반을 말씀하시니, 열반이란 것은 어떤 법을 말하여 열반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모든 알음알이의 법체상을 굴려서 소멸한 것이며
모든 소견으로 훈습함을 돌이켰으며 심(心)과 의(意)와
아라야식의 법상 훈습을 돌이켰음으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나와 및 여러 부처님이 이와 같은 열반을 말함은 이 법체와 경계가 공한 것이니라.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말하자면 안의 몸 거룩한 지혜로 수행할 경계인 것이며,
유무법(有無法)을 허망하게 분별함을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떳떳함이 아니라 하느냐.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인 분별법을 떠난 것을 말함이니
이러므로 떳떳함이 아니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단멸이 아니라 하느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성인이 안의 몸으로 증득함을 말함이니 이러므로 단멸이 아니니라.
대혜여, 반열반이란 것은 죽음도 아니요, 멸함도 아니니라.
대혜여, 만약 반열반이 죽음의 법이라면 응당 삶의 속박이 있을 것이니라.
대혜여, 만약 반열반이 멸하는 법이라면 응당 유위법(有爲法)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반열반이란 것은 죽음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요, 여실(如實) 수행자의 귀의할 바니라.
대혜여, 열반이라 말함은 가히 취할 바도 아니며 가히 버릴 바도 아니요 단멸도 아니며
떳떳함도 아니요 하나 뜻도 아니며 가지가지 뜻도 아니니 그러므로 열반이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성문의 열반이란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여 모든 법을 깨닫나니,
그러므로 성문의 열반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벽지불의 열반이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모든 경계를 보리니,
떳떳함이 없으며[無常] 낙이 없으며[無樂] <나>가 없으며[無我] 깨끗함이 없다[無淨]하여
전도(顚倒)한 상을 내지 않나니라.
그리하여 성문과 벽지불은 구경 아닌 곳에서 열반이란 생각을 내나니라.
대혜여, 나는 그대를 위하여 두 법체상(體相)을 말하리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언설에 집착하는 체상이요, 둘째는 세상일에 집착하는 체상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언설(言設)에 집착하는 체상이냐. 말하자면
끝없이 오면서 언설(言設)에 집착하고 희론 훈습으로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세상일에 집착하는 체상이냐. 말하자면,
오직 이 자심(自心)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고 바깥 경계를 본 것이니라.
대혜여, 여러 보살 마하살이 두가지 원력(願力 = 부처님의 원력)으로 주지(住持)함에 의하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 정례(頂禮)하고서 의심된 일을 묻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두가지 원력으로 주지(住持)함이냐. 첫째는 사마, 삼매파티에 의지하여 주지함이요,
둘째는 온 몸이 낙(樂)을 얻음이니,
부처님, 여래의 손으로 그의 이마를 만져 주심을 받아 주지하는 힘인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초지(初地) 가운데 머물러 부처님의 주지하는 힘을 받으므로
이 보살의 대승 광명 삼매에 들어갔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대승 광명 삼매에 들고나면 그때엔 시방 세계의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보살에게 주지하는 힘을 주시므로 몸과 입과 뜻을 나타내어 보이시나니라.
대혜여, 금강장(金剛藏) 보살 마하살과 및
그 밖에 성취 여시공덕상(成就如是功德相) 보살 마하살 같은 이들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보살 마하살은 초지 가운데에 머물러서 삼매, 사마파티의 힘으로
주지(住持)함과 백천만억 겁(劫)에 닦아 모은 선근(善根)의 힘으로써 차례로 참다히 알아
모든 지위에서 대치(對治)하는 법상(法相)을 성취하나니,
그 보살 마하살이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러서는
큰 보배 연꽃 궁전의 사자(師子) 자리 위에 앉아 있을 것이며,
동류인 보살 마하살의 권속들도 둘러 모시는데 보배 관[寶冠]과 영락(瓔珞)으로
그의 몸을 장엄한 것이 잠부나다 염부단금(閻浮檀金)와 참파카[葡瞻]와 해와 달의 광명과 같고,
연꽃의 빛보다 수승하리라. 그 때엔 시방 세계의 여러 부처님께서 각기 그의 손으로
멀리 연꽃 자리 위에 있는 보살 마하살의 이마를 만져 주시리니,
이는 자재왕(自在王)과 제석왕과 전륜왕(轉輪王)이 그 태자의 정수리에 물 부어
왕위를 전수함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저 지위를 받은 보살과 그 권속인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의 손으로
그 이마를 만져 주심으로 온 몸의 낙(樂)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의 이마를 만져서 주지하는 힘이라 말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이름하여 보살 마하살의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이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을 의지하므로 능히 일체 여래의 몸을 관찰하나니라.
대혜여, 만일 이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이 없다면, 부처님, 여래를 얻어 보지 못하리라.
대혜여, 만일 보살 마하살이 이 두가지 주지하는 힘을 떠나서 능히 설법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응당 설법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이른바 부처님의 주지하는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여래의 주지(住持)하는 힘에 의지하므로 산하(山河)와 석벽과 풀과 나무와 동산 숲과
또한 가지가지 종류와 성읍과 취락과 궁전과 집들이 모두 능히 설법하는 소리를 낼 것이며,
저절로 풍류 소리가 날것이어든, 대혜여, 어찌 하물며 유심자(有心者)인 귀먹은 이와 눈먼 이와
벙어리와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든 고뇌(苦惱)를 떠난 것이랴. (이것은 말 아니 하여도 알수 있는 것임)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주지하시는 힘으로 한량없이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보살 마하살이 삼매, 사마파티에 들적 과 및
여러 지위에 들어갈 때엔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주지하는 힘을 주시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업(摩業)과 번뇌와 산란심(散亂心)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성문의 선정(禪定)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안의 몸으로 여래의 지위를 증득하기 위한 것이며,
안의 몸으로 법을 증득하는 것을 증장(增長)하기 위함이니라.
대혜여, 그러므로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보살들을 위하여 주지하는 힘을 지어 주시나니라.
대혜여, 만일 여래가 보살을 위하여 주지하는 힘을 지어 주지 않는다면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과 마사(魔事)에 떨어질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큰 자비로 여러 보살을 거두어 주시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자신의
본원력이 청정함에 의하여
삼매에 들고 지위를 받는데
초지에서 十지에 이르는 동안
인중존(人中尊)이신 부처님의 신력으로
주지함을 지어 주시나니라.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3-1)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十二인연이 인(因)으로부터 과(果)가 생한다’ 말씀하시고,
‘자심의 망상분별인 소견의 힘으로 생긴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니,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외도도 또한 ‘인으로부터 과가 생긴다’고 말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가 또한 말하기를 ‘자성(自性)과 자재천(自在天)과 시간과
작은 티끌들의 인으로부터 일체법이 생한다’고 하나이다.
부처님도 또한 ‘인연에 의하여 모든 법이 생한다’ 말씀하시고,
‘스스로 건립한 법은 있지 않다’ 말씀하지 아니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는 또한 유(有)와 무(無)로부터 ‘모든 법이 생겼다’ 하오며,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본래 없는데,
인연에 의지하여 생기고 생겼다가는 도로 없어진다’ 하시오며,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무명(無名)으로부터 행(行)을 반연하며,
내지 안식(眼識)등에 의지함이 있으므로 일체 법이 생긴다’고 하시니,
세존의 말씀과 같을진대 또한 모든 법이 인이 없어도 생기는 있으오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인(因)으로부터 생함이 아니기에 일시(一時)인 것이요
전후(前後)로 생함이 아니니, 이 법으로 인하여 이 법이 생긴 까닭이옵니다.
세존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되, ‘허망한 인법(因法)으로 인하여 이 법이 생겼다’하시니,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할진대 외도의 설법이 수승하고,
여래는 그와 같지 못하오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외도는 말하기를 ‘인(因)이 인연 없이도 능히 과(果)를 낸다’하고
여래의 설법하심은 ‘인도 또한 과에 의지하고 괴도 또한 인에 의지한다’하시니,
만일 그렇다면, 인연은 인도 과도 없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할진대 저[彼]와 이[比]의 인과(因果)가 전전(展轉)히 무궁(無窮)하겠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이 법으로부터 저 법이 생한다’하시니,
만일 그렇다면 인이 없이 법이 생긴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지금 마땅히 말하겠노라.
내가 말한 ‘이 법으로 인하여 저 법이 생긴다’는 것은 외도가 세운바 ‘인과는 인이 없다’는 법과,
또한 ‘인으로 부터 생겼다’는 것과는 같지 않나니, 나는 그와 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말한 ‘모든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인연이 없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잡란(雜亂)함도 아니며 또한 전전히 무궁한 허물도 없으리니,
무슨 까닭이냐, 능히 취하며 [能取] 가히 취할[可取]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는 자심에서 나타나 보인 것임을 알지 못하므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법에 집착하고,
오직 자심에서 안과 바깥 법을 본 것임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 것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자심 안의 경계를 알지 못하므로, 있고 없는 물질을 보나니,
그러므로 외도는 이와 같은 허물이 있는 것이요 나의 허물은 아니니라.
나는 항상 ‘인연이 화합하여 모든 법이 생하고, 인이 없이 생(生)함은 아니라’ 말하노라.”
대혜 보살은 또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말함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는가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없다면 응당 말하지 않으리니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언설(言設)에 의하여 응당 모든 법이 있는가 하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법이 없고도 말은 또한 있나니, 말하자면 토기뿔과 거북털과 돌계집등은 세상에서 말이 있나니,
대혜여, 그대가 말한 ‘말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다’고 한 이 뜻은 벌써 깨졌느니라.
대혜여, 일체 국토마다 언어(言語)로 설법함은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언어는 오직 사람의 마음에서 분별하여 말함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똑바로 보기만 하고 깜짝이지 않고, 말이 없어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바로 모양만 보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다만 눈썹만 움직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오직 눈모양만 움직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웃기만 하여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하품하고 입을 벌려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기침하여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생각만 하여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몸짓하여서도 설법함이니라.
대혜여, 저 무슨(無瞬) 세계와, 또한 중향(衆香) 세계와, 보현(普賢) 여래, 응공,
정변지의 세계에서는 그의 보살 마하살이 여래의 눈이 잠깐도 깜작이지 않으심을 관찰하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며, 또한 한량없는 수승한 삼매법을 얻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말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여, 여래는 또한 여러 세계 가운데에 일체 작은 벌레와 모기와 등애와 파리들인 중생의 종류들이
말하지 않고도 한가지로 자기네의 일을 지어 이루는 것을 보았노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저 허공과 토끼의 뿔과
또한 돌 계집은
없는 것이나, 말은 있나니
이와 같이 공연히 분별함이니라.
인연으로 화합한 법이거늘
어리석어서 분별 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지 못했기에
삼유(三有) 가운데서 윤회하느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또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하신 떳떳하다 말씀하신 법은 어떤 법에 의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셨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미혹법(迷惑法)에 의하여 내가 떳떳하다 말함이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성인도 또한 세간의 미혹법을 보나, 전도(顚倒)한 마음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아지랑이와 불바퀴와 털바퀴와 간달바성과 눈홀림과 꿈과 물 속의 달과
거울속의 얼굴을 세상에서 지혜 없는 자는 여러 색상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나니,
그는 전도(顚倒)한 견(見)인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분별은 내지 아니하나,
저 미혹의 일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저 가지가지 미혹의 일을 보나, ‘진실이다’고 하는 마음은 내지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유무법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대혜여, 어찌하여 미혹 법이 유(有)와 무(無)를 떠난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어리석은 범부는 가지가지 경계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귀(餓鬼)가 큰 바다와 강가[恒阿]의 물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 미혹법은 있다 말할 수도 없고, 없다 말하지도 못할 것이니,
대혜여, 딴 중생은 저 물인 것을 보기 때문에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대혜여, 미혹의 일도 또한 그와 같나니, 성인은 전도한 견(見)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미혹법이 떳떳하다 말한 것은 생각이 차별하기 때문인 것이니라.
대혜여, 미혹법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모양을 보나, 미혹법은 다르다, 차별이다, 분별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미혹법은 떳떳함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미혹법을 진실이 된다 하느냐, 성인은 미혹법 가운데도 전도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한 사실인 마음도 내지 않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성인이 저 미혹법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 생각을 일으키면 거룩한 지혜의 일이 날수 없느니라.
대혜여, 조금이라도 생각을 일으킨다면, 범부라고 말할 것이요, 성인이라고 말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전도라, 전도 아니라 한다면, 능히 二종성(二種性)이 나나니,
무었이 二종이냐 첫째는 능히 범부성을 생함이요, 둘째는 능히 성인성을 생함이니라.
대혜여, 저 성인성(聖人性)이 능히 세가지 차별인 성(性)을 생하나니,
이른바 성문과 벽지불과 불국토의 차별성인 것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저 성문승성(聲聞乘性)을 생함이냐.
대혜여, 이른바 저 미혹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에 집착하여 능히 성문승성을 이룬 것이다.
대혜여, 이를 미혹법이 성문승성(聲聞乘性)을 능히 내고 이룬 것이라 하나리라.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저 벽지불승성을 내는 것이냐.
대혜여, 이른바 저 미혹법에 집착하여, 모든 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능히 벽지불승성(酸支佛乘性)을 낸 것이니,
대혜여, 이를 미혹법이 능히 벽지불승성을 내고 이룬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지혜 있는 자가 곧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불승성(佛乘性)을 내는 것이냐,
대혜여, 이른바 저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이 오직 자심임을 보고,
유(有), 무(無)법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대혜여,
이와 같이 미혹법을 관찰하여 능히 여래승성을 내고 이름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것을 성(性)의 뜻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어리석은 범부가 곧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가지가지 일을 보고,
능히 세간에 있는 바 승성을 내는 것이냐, 모든 법이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결정코 다르지 아니함을 관찰함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저 미혹법은 어리석은 범부가 허망하게 가지가지 법체를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저 미혹법은 사실인 일도 아니며, 사실 아닌 일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성인은 저 미혹법을 관찰하되, 허망하게 분별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심(心), 의(意), 식(識)의 신상(身相)을 돌이켰고,
번뇌 습기를 떠났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저 미혹법을 돌이켰기에 진여(眞如)가 된다 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무슨 법이라 하느냐, 대혜여, 이는 진여법이라 이름함이니,
분별을 떠난 법이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뜻으로서, 나는 거듭 진여의 법체가 분별을 떠난 것임을 선설(宣設)하노니,
저 진여가운데에는, 그 허망한 분별법을 떠난 것임이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 미혹법은 있는 것이옵니까,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미혹법은 가지가지 상에 집착한 것이므로 있다 이름 함이나,
대혜여, 저 미혹법이 망상(妄想)가운데에 만일 있을진대,
일체 성인은 응당 모두 있다, 없다하는 허망한 법에 집착함을 떠나지 못하여야 할 것이다.
대혜여, 외도가 말한 ‘十二인연이 인(因)으로부터 생(生)함과
인으로부터 생하지 아니함이 있다’는 것과 같아서, 이 뜻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미혹법이 눈흘림으로 본 것 같다면 이 미혹법은 미혹과 다를 것이니,
그는 미혹법이 능히 법을 생(生)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미혹법이 번뇌의 허물을 내는 것이 아니니, 대혜여,
만일 미혹법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모든 허물은 나지 아니하리라.
대혜여, 일체 환(幻) 술법은 사람의 공력과 주술(呪術)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자심의 분별하는 번뇌로 생기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대혜여,
저 미혹법은 모든 허물을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사람이 미혹법을 본 것임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의 허망한 것의 미세한 일에 집착하여 모든 허물이 생긴 것이요,
성인을 말함은 아니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인은 미혹을 보지 않고
세간은 진실함이 없어서
미혹이 곧 진실이며
진실법도 또한 미혹이라네.
미혹이 서로 생함 있는 듯 한 것을
버리고 떠났다 하여도
그는 곧 미혹이니,
깨끗지 못함, 눈가리움 같나니라.
“대혜여, 그대는 ‘환이란 것이 없는 것이라.
일체법이 또한 없는 것도 환(幻)과 같다’ 말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법이 환과 같은 상에 집착한 이를 위하여 모든 법이 환과 같다 말씀하시고,
모든 법이 전도(顚倒)한 상에 집착한 이를 위하여 모든 법이 환과 같다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환의 모양과 같다 함에 집착하였다면,
일체 법이 모두 환의 모양과 같다고 말씀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모든 법이 전도한 모양이라 함에 집착하였을진대,
일체 법이 환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아니 하시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색(色)에는 가지가지 인상(因相)이 있어 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색에는 모든 상이 있어 환과 같이 볼만한 딴 원인이 있지 않사오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모든 법에 집착한 일체가 환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지가지 법상에 집착했다 하여 모든 법 일체가 환과 같다고 말함은 아니니라.
대혜여, 모든 법은 전도한 것이어서 빨리 없어지는 것이 번개와 같기 때문에 환과 같다 말함이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은 비유컨대 번개 빛이 곧 보였다가 곧 없어지는 것과 같으나,
범부는 보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또한 그와 같거늘,
일체 법을 자심에서 같은 모양, 다른 모양으로 분별하여,
능히 관찰하지 못하므로 여실히 보지 못하나니, 색등의 법에 허망스리 집착한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색(色)등의 법을 보지 아니한 이에겐
환이 없는 법이라 말하노니,
그러므로 상하(上下)에 어기지 않음이니라.
그리고 나는 일체 법을
본성 있는 것 볼수 없는 것이
여환(如幻) 무생체(無生體)라 말하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모든 법이 생하지 않음[不生]을 또한 환과 같다고 말한다면,
곧 세존의 전후(前後) 말씀하신 바가 스스로 상위(相違) 함이 없겠나이까.
여래께서 일체 ‘모든 법이 환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체 법 생하지 않음이 환과 같다 말한 것은 앞뒤가 상위(相違)한 허물이 되지 않으리니,
무슨 까닭이냐,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이 생법(生法)과 불생법(不生法)을 보지 못하고,
자심의 유무(有無)와, 바깥 법의 유무(有無)를 능히 깨닫지 못함이니,
무엇 때문이냐, 능히 불생법(不生法)을 보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내가 이와 같이 모든 법을 말한 앞뒤가 상위한 것은 있지 않나니라.
대혜여, 나는 외도가 내세운 인과의 뜻이 합당하지 않는 것을 막으려고....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 말하노라.
대혜여, 일체 외도의 어리석은 무리들이 이러한 말을 하되, ‘유와 무로부터 일체 법이 생긴다’하고,
자심의 분별과 집착의 인연으로 생하는 것을 말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나는 모든 법의 유(有)도 또한 불생(不生)이며, 무(無)도 또한 불생이라 말하노니,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모든 법을 불생이라 말하노라.
대혜여, 내가 일체 법이 있다[有]고 말한 것은 제자(弟子)들을 두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두 법을 알게 함이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모든 세간(世間)을 섭취(攝取)함이요. 둘째는 모든 단견(斷見)을 두호하기 위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업(業)에 의하므로 가지가지 몸이 있어서 육도(六道)에 태어남을 받나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을 있다 말하여 세간을 섭취하나니라.
대혜여, 내가 일체 법을 환과 같다 말한 것은 일체 어리석은 범부로 하여금
필경에 능히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여의게 함이니,
모든 범부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집착하여 사건(邪見)에 떨어지고,
다만 자심이 허망하게 본 것임을 능히 알지 못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집착 인연으로서 생긴 법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이 환 같고 꿈 같아서 실체가 없다’ 말한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는 사견의 마음에 집착하였기에 자신과 타인을 기광하고,
일체 법을 여실히 보는 것을 떠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여실견(如實見)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자심이 모든 법을 보는데에 들어간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대 말한바와 같이 모든 법은
일체 생함이 아니라 함은
이는 인과를 비방 함이며
여실견이 아니니라.
내가 유생(有生) 법을 말함은
세간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모든 법을 환과 같이 보아서
보는 상에 집착 아니하노라.
부처님은 또한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지금 여러 보살 마하살을 위하여, 명(名), 구(句), 자(字), 신(身)인 상을 말하리니,
보살이 명, 구, 자, 신인 상(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며, 명, 구, 자, 신인 상에 의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요, 보리를 얻고서는,
중생을 위하여 명, 구, 자, 신인 상을 말하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곧 말씀하여 주시옵기를 원하옵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어떤 것이 명신(名身)이냐,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에 의하여 명신이라 이름 지음이니,
사물(事物)의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나니 대혜여, 이를 내가 명신(名身)이라 말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구신(句身)이냐, 말하자면,
뜻[義]과 사물을 결정함인 구경(究竟)에 보이는 뜻인 것이니,
대혜여, 이를 내가 구신이라 이름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자신(字身)이냐, 말하자면, 문구의 필경인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명신은 어떤 법에 의하여 명(名), 구(句)를 요별(了別)하고,
제 형상을 능히 요지(了知)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구신은 구(句)와 사(事)의 필경인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명신은 이른바 모든 글자는 이름을 따라서 차별함이니,
아(阿)자로부터 하자에 이르니 명신(名身)이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또한 자신(字身)은 소리의 장단(長短)과
음운(音韻)의 고하(高下)를 말하여 ‘자신’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또한 구신(句身)은 골목길 발자국인 것이니,
사람과 코끼리와 말과 여러 짐승의 발자국등과 같은 것을 구(句)가 된다 이름하니라.
대혜여, 또한 명자(名字)는 색(色)과 四음이 없는 것을 말함이니, 명에 의하여 말한 것임이니라.
대혜여, 또한 명자(名字) 상은 능히 명자상을 요별(了別)함을 말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명, 구, 자, 신인 상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명, 구, 자, 상을 그대는 마땅히 배워서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하여 줄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명신(名身)과 또한 구신(句身)과
그리고 자신(字身)의 차별을
범부는 어리석게 계교하고 집착함이여
코끼리가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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