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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등경전(대방등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
  글쓴이 : 無學子 古…     날짜 : 09-08-05 03:02     조회 : 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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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경전(대방등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
 

<개요와 구성>

대승불교의 목적을 중생구제에  있다고  본다면,  그러한  목적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상은 여래장사상일 것이다. 여래장 사상은 모든 중생들이 깨달을 가능성과 근기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래장 계열의 경전들은 대승 초기경전들인 반야, 법화, 화엄계열의 경전들에 이어 중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방등여래장경>은 대승 중기 경전에 속하는 경전으로서 여래장 사상을 설한 경전이다.산스크리트이름은 <아리야 타타가타 가르바 나마 마하야나 수트라(Arya tatha-gata garbha nama mahayana sutra)>이다.

한문으로  번역된  것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가  서기  420년에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과 당(唐)의 불공(不空)이  번역한  <大方廣如來藏經>의  두가지가 있다. 현재 한문본은 신수대정대장경 제 16권  4백57쪽~4백60쪽에  있다.

한글대장경에는  제65권  3백82쪽~3백95쪽에  있다.한문  번역은  원래는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첫번째의 번역은 서진(西晋)의 법거(法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법거의 번역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법거의 생존연대가 서기290-312이므로 3세기 초에는 이미 <여래장경>이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래장계열의 경전들 가운데 최초로 이루어진 경전은 <대방등여래장경>이다. <여래장경>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중생이 여래장을  지니고  있음을  설한  경전이다.  여래장(如來藏)의  산스크리트어는 [타타가타  가르바(tathagata  garbha)]이다.  [타타가타(tathagata)]는 여래를 의미하고, [가르바(garbha)]는 태아나 모태를 의미한다.

즉 여래장은 여래가 될 씨앗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뢰야식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지만  <여래장경>에서는  아직  그러한  연관관계가  나타나 있지는 않다. 여래장계의 경전에서는 중생의 번뇌속에 있으면서도 더럽혀지는 일이 없는 여래장이 있음을 설하고 있다. 경전의형식은 설법한 내용 다음에는 반드시 게송의 형식으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도 단순하여 여래장이 있음을 강조할 뿐 아뢰야식과의 관계를  설한다거나 여래장과 아뢰야식을 함께 설하는  내용도  아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여래장경>은  여래장계  경전가운데 최초로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전에서 주장하는[일체의 중생이 갖추고  있는  여래장은  상주불변 한다]라는  내용은  급반경<急般經>에서  주장하는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여래장경>에서는 여래장에  대해 아홉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하고 있다. 대단히  짧은경전으로서  대부분의 경의 내용은 이 아홉가지 비유를 설명하고 있다.

<여래장경>에 설해진 아홉가지의 비유는 후에 구경일승보성론<究境一乘寶性論>에  계승되어 여래장 사상의 체계화가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아홉가지 비유를 통하여 <여래장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홉가지 비유에 대해서는 <보성론>에서 <여래장경>의 게송을  인용하여, 여래장의 청정성과 아홉가지 번뇌와 연결시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여래장경>에서는 아홉가지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고,  아홉가지 번뇌와 관련된 내용은 <보성론>에 의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보성론>에서는 무량번뇌소전품 대정신수대장경 제31권.8백37쪽 윗단, 8백40쪽 아랫단에 설명되어 있다.


<여래장의 9가지 비유>

<여래장경>의 처음 부분에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지 십년째 되던  해에,  왕사성의  기사굴산에서  무수한  보살들에게  여래장경을 설하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아홉가지  비유를  통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하여, 여래장경을 설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1. 시든 연꽃 가운데 앉아 있는 부처님

시든 연꽃 가운데 앉아 있는    부처님의 비유에서는 중생과 여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여래장경>에  있는  [연꽃  가운데  앉아 있는 부처님의 비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만든 연꽃이 시들고 무수한 부처님께서 그 연꽃 안에 머물고  있으며,  상호는 장엄하고 결가부좌한 채로  커다란 광명을  내는  희귀한  일을  대중이 보고 공경하지 않을수 없음과  같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내가 부처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보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등의 여러  번뇌  가운데  여래의  지혜와  여래의  눈과 여래의 몸이 있어,  결가부좌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일체의  중생이 여러 세계의 번뇌 가운데 있어도  여래장이  있어  항상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덕스러운 상(相)을 갖추고 있음이 나(부처님)와 다르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비유는 중생이 여래장임을  설하고  있다.  그  근거로서 모든 중생의 여래장은 항상 변하지 않는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즉 여래와 중생은 다르지 않으며, 단지 번뇌에 덮혀  있어도  중생이  지니고  있는 여래장은 흔들리지 않으며, 이것이 중생의 본래  모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여래의 눈으로 본 것이다. 여래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중생이 본래 여래임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남자야, 부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일체  중생의  여래장은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변하지 않는다. 단지  중생은  번뇌에  덮혀  있기 때문에 여래가 세상에 나와 자세히 설하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번뇌를 없애고 일체지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시든연꽃 가운데 앉아 있는 부처님]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여덟 가지의 비유도 중생은  갖가지  번뇌로  덮혀  있어도  여래장을  지니고 있으며, 번뇌를 제거하면 본래의 모습인 여래가 드러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꿀벌 무리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꿀

좋은 꿀이 벼랑의 나무에  매달려  있고  그  주위를  무수한  꿀벌들이 지키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방편으로써 먼저 그 벌을 물리치고,  뜻에 따라 꿀을 먹고, 그 혜택을 모든 사람에게 베푼다.  이상이  [꿀벌  무리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꿀]의 비유이다.

여기서는 번뇌(꿀벌의 무리)를 제거하고, 여래장(좋은  꿀)을  드러내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꿀을먹되 뜻에 따라 먹어야 하며(여래장을 드러내며), 그 먹은 목적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임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게송에서는  [대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한다]고  보다  명확하게 목적을 설하고 있다.

  3.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열매

맵쌀의 껍질과 겨를 아직 벗기지 않았을 때는, 가난하고 어리석은  자는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생각하여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탈곡을 하면 항상 유용하게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래의 무량한 知見을  번뇌 (맵쌀의 껍질과 겨)가 덮고 있다는 비유이다. 게송에서는 이 비유에 대해 중생은 부처의 여래성과 같아, 개화하여  청정하게 하면 즉시  무상도를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4, 더러운 곳에 떨어져 감추어져 있는 순금

순금이 더러운 곳에 떨어져 오물에 덮여있어도  세월이  지나도  순금은 파괴되지 않는데도 아무도 아는 자가 없는 것과  같다.  그  때  지혜의 눈을 가진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순금이 있음을 알려 주어  순금을  갖게 한다. 여기서 더러운 곳은 무량한 번뇌이고, 순금은 여래장이며,  지혜의 눈을 가진 자는 여래를 뜻한다. 부처님이 순금이 있음을 알려주는 목적도, 모든 중생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부처님이 중생구제를 하는 것과  같이 베풀게 하기 위한 것이다.

  5. 가난한 집에 있는 보물

가난한 집에 보물이 있어도, 보물은 자기가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보물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말을 해주는 자가 없으면, 중생은 보물창고를 개발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중생은 여래의  지견(知見)과  두려울  것  없는  힘과 큰 법의 보물창고가 몸안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오욕(五欲)에 빠져들고, 윤회를 끊지 못하여 무량한 고통을 받는다. 중생(가난한 집)의 몸 안에 여래장(보물창고)가 있음을  알려  주어  큰  부자가  되게  하고(깨달음을 얻게 함)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하여 경을 설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6. 암라나무 열매(망고와 비슷한 과일)안에 들어 있는 씨앗

암라나무열매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은  부서지지  않아,  땅에  심으면 커다란 나무가 된다. 이와  같이  무명번뇌(열매)에  덮여  있는  여래장(씨앗)은 부서지지 않는다.

  7. 누더기에 싸여 있는 순금의 상

어떤 사람이 순금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는데, 험한  길을 가다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누더기로 포장을  하여  가지고  갔다.  이 사람이 여행 도중에 갑자기 죽게되어 순금상은 들판에 버려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순금상이 누더기에 쌓여 있어 더럽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지혜의 눈을 지닌 자는 누더기 순금상이 있는 것을 알고 꺼내어 예를 올린다.

이와 같이 중생이 번뇌(누더기)에 쌓여 있어도 그 안에 여래장(순금상)이 있어 여래와 다르지 않다. 중생이 비록 번뇌에 쌓여 생사의모든 괴로움을 받지만, 중생이 지니고 있는  여래의  성품(여래장)은  번뇌에  부서지지 않는다.

  8. 비천한 여인이 임신한 존귀한 왕의 아들

가난하고 천한여인이 귀한 아들을 잉태했는데,마땅히 성스러운 왕으로서 천하의 왕임에도, 알지못한채 세월을 보내어 스스로를 항상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중생은 모두 그 몸에 여래장이 있지만, 가난하고 천한 여인과 같이 알지 못한다. 중생은 비록 번뇌에 덮여 있다해도, 여래장을  지니고 있어 존귀한 몸이므로 스스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중생이 지닌 여래장은 모든 중생을 구제할 광명이고,  정진하여 가장 높은 바른깨달음을  얻어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게  하기  위하여 설하는 것이다.

  9. 진흙에 묻힌 황금의 상

대장장이가 순금의 상을 다 만드는데 어리석은 자는 겉의틀이  검다하여 땅에 함부로 놓아 둔다. 대장장이는 비록 겉이 검은 틀로 쌓여  있다해도 틀이 식은 후에 그 틀을 열고 순금상을 꺼낸다. 안에 들어 있던 순금상은 더러운 것(번뇌)이 제거되면 그 상호(相好)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와 같이 번뇌의 진흙에 덮여 있는 중생도 여래장을  지니고  있으므로 금강의 지혜로써  번뇌의  틀을  깨트리고  여래장을  드러내어야  함을 설하고 있다.

위의 아홉가지 비유는 번뇌에 덮혀 있는 중생의 여래장을 비유한 것이다.

시든 연꽃, 꿀벌의 무리, 단단한 껍질, 더러운 오물, 가난한 집, 암라나무 열매, 누더기, 비천한 여인, 진흙틀의 아홉가지는 번뇌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부처님, 꿀, 열매,  순금, 보물, 씨앗, 순금상, 잉태된 왕의 아들, 황금상의 아홉가지는 번뇌에 덮여 있는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여래장을 의미하고있다. <보성론>에서는 위의 아홉가지 비유에 연결시켜  아홉가지 번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신수대정대장경 제31권, 8백31쪽 윗단)

  1, 연꽃이 처음 필 때는 보기 좋아도 시들어 질 때는, 보기에 좋지 않다. 탐욕의 번뇌도 처음에는즐거운 듯 하지만 나중에는 즐겁지 않다.

2, 벌의 무리들은 꿀을 만들기 위하여 성내는 마음으로 꽃을 문다. 성내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많은 고통과 번뇌가 생긴다. 중생의  성내는  번뇌를 설명한 것이다.

3, 벼는 안에 곡식을 지니고 있지만  밖은  단단한  껍질과  겨로  덮여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은 어리석음의 번뇌로 인하여 안에 여래장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4, 더러운 오물과 같이 지혜를 보는 탐내는 마음도 이와  같고,  욕심이 일어날 때 번뇌에 묶여있는 것은 마치 더러운 오물과 같다. 이것은 중생이 일으키는 탐욕의 번뇌의 참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5, 중생은 땅속에 있는 진귀한 보물을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자재로운 지혜가 무명번뇌로 덮여 있어도 중생은 지혜의 눈이 없어 보지 못한다.

6, 과일의 씨앗은 나중에 싹을 틔운다. 이와 같이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번뇌는 다음의 수행계위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번뇌의  연기법을 설명한 것이다.

7, 보살의  제7지에  있는  모든  번뇌는  마치  태아와  같다.  이것은 일곱번째의 비유로 번뇌를 끊고,  무분별의  지혜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8, 보살의 7, 8, 9지는 진흙틀의 진흙과  같이  아직은  번뇌를  지니고 있다. 대지혜를 지닌 모든 보살은 금강의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다. 이것은 대보살의 경지를 비유로써 설명한 것이다.

9, 연꽃에서 진흙틀에 이르는 아홉가지 비유는 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아홉가지 번뇌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래장의 의미>

위에서 말한대로  <여래장경>에는  여래장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홉가지 비유를  통하여,  모든  중생이  여래장을 지니고 있으며, 여래장을 드러내어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을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래장경>은 이미  여래장  사상의  근원을 제시하고 있으며, 뼈대를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여래장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씨앗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여래장은 한문번역의  불종성(佛種姓)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종성(種姓)의 산스크리트어는  고트라(gotra)이다.  고트라는  인도사상에서는  원래 선천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부파 특히 유부(有部)에서는 성문(聲聞), 독각(獨覺),보살(菩薩)의  종성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인도의 계급제도인 사성(四姓)이 태어나자 계급이 나누어지는 것과 같이, 삼승(三乘)의 깨달음의 경지는  각기  달라진다는  의미로사용되었다.  <화엄경>에서는 보살을 여래의 가문에 태어난 자라고 규정하고, 그 임무는 부처의 계통을 보존하고 단절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삼계의 중생이 모두 부처님이 자식이라고  하며  일승(一乘)을 설하고 있다. 결국  고트라의  개념이  여래장사상과  결합하여,  여래의 가문을 이루는 중생의 세계로 확대되었다. 모든 중생은 여래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차별이 없어,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일천제(一闡堤)도  여래장사상에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래장이 중생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종성(種姓)이므로,  이것은  여래의 태(胎)와 밀접한 관계가 있게 된다. 태의 가르바(garbha)는고트라(gotra)와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가르바는  본성(本性)의  의미이다.여래장은<반야경><화엄경><법화경><유마경>에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중생계와 연결되지만, 여래장계열의 경전에 오면 여래장의 의미가 정착된다. 특히<여래장경>에서 처음 보이는 여래장사상은 <보성론>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정립된다.

여래장의 세가지 뜻은
1)중생이 여래에 함장(含藏)되어 있고,
2)중생이 여래를 갖추고 있으며,
3)중생은 여래의 공덕을 모두 내어 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