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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 사상 조명 (1) - 人間 徐 京 保 法王
  글쓴이 : 일붕선교종     날짜 : 06-04-11 09:23     조회 : 3180    
人間 徐 京 保 法王

               글 백 동 주
               편집 엄 성 범

- 세계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를 만나다 -

나는 어는 유수한 월간 잡지사로부터 일붕(一鵬) 서경보 스님에 대한 인간적인 면에서의 심층취재를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30여 년간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물론 외국의 국가원수를 비롯하여 아래로는 절도, 강도, 창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계층과 접촉을 가진 필자로서는 그 의뢰는 ‘식은 죽 먹는’일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특별고료까지 약속 받았으니 참으로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徐京保 스님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미리 양해를 구해 두겠지만 나는 그 분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수십만의 신도를 거느리며 수백억 원을 물 쓰듯 하는 목사나 수십만 달러를 밀반출하려다 쇠고랑을 찬 목사 등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절간을 짓고 돈 많은 과부들로부터 공양이라는 이름으로 돈 푼께나 긁어모아 외국나들이를 자주하며 불교계에 종사하는 ‘중’정도의 인상에 불과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친교를 맺어왔던 도선사(道詵寺) 전주지 이 모씨의 말로까지 연상되어 그 역시 하찮은 말세의 스님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저명인사들의 집으로 초대 받았을 때 화려하게 표구되어 벽에 걸린 그의 휘호 역시 별로 탐탁챦게 여겨 오던 참이었다. 이래저래 ‘그 까짓 스님 한 분 만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그를 찾아 나섰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잡지사의 청탁을 거절하고 말았다. 내 필력으로는 도저히 ‘人間 徐京保’를 한자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어느 초여름, 나는 수소문 끝에 세검정 골짜기에 있다는 그 스님을 찾아 갔다.
세검정 - 옛날 외적을 무찌른 장군들이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전설의 개울, 삼각산의 주봉 보현봉을 타고 내리는 맑은 개울, 북악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딱나무로 한지를 뜨던 맑은 개울, 앵두나무 숲으로 뒤덮였던 낭만의 골짜기 세검정. 그러나 이제는 옛 모습을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세검정에 그 스님이 살다니 -
우중충한 5층짜리 신영아파트 못 미쳐 오른쪽으로 ‘일붕선원’이라는 눈여겨보아야 보일만한 자그마한 안내간판이 걸려있다. 지금은 복개되어 개울은 보이지 않지만 옛 개울자리를 따라 2~3분 걸어 내려가면 ‘일붕선원’의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 주변의 분위기는 완연히 달라진다. 버스길에서 불과 2-3분의 거리인데도 말이다. 첫째 그 시끄럽던 자동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소음공해에 찌들었던 귀가 오히려 멍멍해질 정도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주변은 앵두나무를 주종으로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옷깃을 여미고 싶은 약간 엄숙한 부위기가 엄습한다. 몇 발짝 걸어가노라면 벌써 행불 내음이 코끝에 와 닿는다.
「一鵬禪院」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작지만 아담한 선시비가 알맞게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약간 겁에 질린 듯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으나 ‘왜 왔느냐?’고 묻는 사람 하나 없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안계십니까?”하고 조용한 말소리를 냈더니 「비서실」이라는 표지가 붙은 문이 열리면서 단정한 아가씨가 나와 “올라오세요.”한다.
안내된 방은 5평 정도나 될까? 결코 잘 정돈된 방은 아니었지만 온갖 서적과 크고 작은 사진들이 사방 벽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다. 한참 만에 승복차림의 조그마한 스님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서경보 올시다”하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아니 이럴 수가? 필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5척 단구의 갸녀린 노인이 그 ‘서경보 스님’이란 말인가?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던 그의 사진이나 내 나름대로 이미지했던 ‘서경보 스님’과는 너무나 걸맞지 않았다.
훅! 하고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체구.
풀잎에 맺은 한 방울 이슬 같은 청초하고도 단아한 모습.
시골 사랑방에서 손주의 재롱을 즐기기에 알맞은 듯한 인자한 미소, 옥반을 구르는 듯한 맑으면서도 약한 여성끼를 띈 듯한 조용 조용한 목소리, 사람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듯한 그윽한 시선, 사랑과 자비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체취, 어디 한 구석, 종교계의 거두, 아니 교주(?)적인 권위의식 같은 것은 찾아 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아! 이 어른이 바로 이 어른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 모습이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가 제주도에서 태어나 몇 살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어느 시골 청년처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고 몇 살에 출가 입문했다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질문은 던질 필요도,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가 불교의, 아니 선의 대가라는 것은 이미 그의 몸에서 발하는 후광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人間 徐京保」에 대해서 이 이상 무엇을 더 알고 싶단 말인가?
필자는 어물어물 몇 마디 나누다가 쫓겨나듯 그의 앞에서 물러났다. 혹시 너무 오래 머물렀다가는 온갖 세속의 풍진에 찌든 내 체취가 그 방안의 공기를 오염시킬까 두려운 상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선원의 입구에 다달았을 때부터 이집 주인이 범상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일별할 수 있었다. 이만한 자리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풍수지리에도 통달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一鵬 徐京保 - 그를 몇 마디로 논하겠다는 생각은 무방한 욕심이다. 그는 종교가이기 이전에 언론인이었다. 아니 언론인이기 전에 문학가였다. 아니 문학가 이전에 학자였다. 아니 학자 이전에 정치가였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광대무변했고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존재이다.
필자의 얕은 지식과 필력으로 감히 그 어른을 논하겠다니 당치도 않은 노릇이다. 필자가 잡지사의 청탁을 거절할 연유가 그것이었다.
지구촌 곳곳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화려하게 연출되는 그의 원동력은 바로 선사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의 기적 같은 활동상이 약간은 납득 되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필자 역시 믿을 수 없다. 거짓말이다. 사기다,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불교를 포교하는 것이 곧 선사상의 보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많은 통일기원시비를 남기고 있다.
그는 선사상을 개인의 심신단련은 물론 호국정신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정착한 이래 호국정신에 개화기를 맞아 역사의 꽃을 피우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본시 우리민족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혈연을 같이 한 단일민족으로서 어느 나라 민족의식과는 달리 상부상조의 정신이 뿌리 깊었다.
이 상부상조의 정신은 신라시대에 있어서는 화랑도 정신으로 이어졌고 이 정신은 애향, 애족, 애국을 핵심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화랑정신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원동력이 바로 불교의 선사상이라는 점이다.
이 사상을 기반으로 한 화랑도정신은 국민의 결속 속에 배양되었고 종국에 가서 구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고려시대에 수많은 몽고족의 침입을 받았지만 선사상에 기반을 둔 호국정신이 이를 능히 막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조시대에 들어와서도 임진왜란의 침략을 받았을 때 승려들의 빛나는 전과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선(禪)정신은 상부상조의 정신과 국가관 확립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서구사상의 팽배로 우리 민족의 사상적 결속이 해이해진 것을 볼 때 불안감으로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동양은 물론 서양도 마찬가지이며 그것은 곧 인간성 상실을 뜻한다.
일붕 서경보 박사는 오늘날 선사상의 앙양은 상실된 인간성을 본래의 인간성으로 회귀(回歸)시키는 작업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성 회복이란 먼저 인간을 존경하고 서로 신뢰하는 마음가짐이다.
요즘 재야에서 부르짖는 민주화의 근본이념도 바로 인간존중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성 상실의 중요원인은 물질문명이 몰고 온 물질만능사상이다. 물질만이 위주가 된다는 그릇된 판단이 인간을 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물질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물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선(禪)정신의 주장은 인간이 물질의 가치보다 높은 가치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전통문화인 선사상을 핵심으로 민족의 자주적인 전통을 되찾아야한다.
우리는 선을 통하여 불신을 제거하고 위기를 극복하여 민족의 슬기를 더욱 더 높은 차원에서 성취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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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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